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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전쟁에서 패배하는 국가들의 구조적 맹점

전략디자이너 2026. 6. 23. 12:55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전쟁에서 패배하는 국가들의 구조적 맹점

부제: 전술적 탁월함이 전략적 공백을 메울 수 없는 이유

 

 1975년 봄, 사이공 함락 직후 하노이에서 미군 장교 해리 서머스 대령은 북베트남 대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전장에서 우리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소."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대화는 한 문장으로 8년 전쟁의 본질을 요약한다. 미군은 거의 모든 교전에서 이겼다.

그리고 전쟁에서 졌다. 두 사실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니다. 둘은 같은 구조에서 나온 서로 다른 결과다.

이 글은 그 구조를 추적한다.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서 진다"는 패러독스를 전술적 무능의 문제로 보는 한, 우리는 영원히 같은 자리를 맴돈다.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1. 패러독스: 이긴 쪽이 길을 잃는다

1968년 1월,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구정(테트) 공세를 감행했다. 군사적으로 이 공세는 재앙이었다 — 공격한 쪽에게. 베트콩은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입었고,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거의 모든 거점을 지켜냈다. 교과서로 평가하면 미국의 명백한 승리였다.

그런데 몇 달 뒤 존슨 대통령은 재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미국은 협상 테이블로 향했다. 전장에서 이긴 쪽이 정치적으로 무너진 것이다.

여기서 멈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투에서 이긴 군대가 어떻게 전쟁에서 길을 잃는가. 이것은 베트남만의 일이 아니다. 역사에는 전술적으로 빛났으나 전략적으로 자멸한 국가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패턴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2. 통념을 하나씩 지운다

이 패러독스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대개 세 가지 통념으로 수렴한다. 진짜 원인에 도달하려면 이 셋을 차례로 제거해야 한다.

통념 A: "전술이 부족했다."

데이터가 반박한다. 미군은 베트남에서 주요 교전을 사실상 패배한 적이 없다. 서머스 자신이 책의 한 장 제목을 "전술적 승리, 전략적 패배(Tactical Victory, Strategic Defeat)"로 달았다. 전술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술적 우수함이 진짜 문제를 가렸다.

통념 B: "물량과 기술이 모자랐다."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은 압도적 산업력·화력·공중우세를 보유했다. 일본의 사례는 정반대 방향에서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 뒤에서 다루겠지만, 일본은 충분한 물량이 없었음을 알면서도 전쟁을 시작했다. 물량은 결과를 설명하는 변수이지 패러독스의 원인이 아니다.

통념 C: "정치인이 발목을 잡았다."

이것이 군 내부에서 가장 사랑받는 변명이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변명이다. 왜냐하면 이 진술은 절반만 맞기 때문이다. 서머스의 통찰은 여기서 날카로워진다. 그는 군이 작위(commission)가 아니라 부작위(omission)로 책임이 있다고 봤다. 합참은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접근권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전쟁의 본질을 규정하고 국민의지를 동원하라고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정치가 군을 제약한 것이 아니라, 군이 전략적 책임을 정치에 떠넘긴 것이다.

통념 C는 반박당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된다. "정치인이 발목을 잡았다"는 불평은, 뒤집으면 "군대가 전략적 목적의 번역을 포기했다"는 자백이 된다. 여기서부터 진짜 진단이 시작된다.

 

3. 구조적 맹점: 네 개의 균열

 전술적으로 이기고 전략적으로 지는 국가들에게는 공통된 균열이 있다. 베트남의 미국과 태평양전쟁의 일본은 이 균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드러낸다. 바로 구조적 맹점이다. 구조적 맹점이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조직 설계상 특정 위험이 보이지 않게 되는 지점을 뜻한다.

균열 1 — 목적과 수단의 단절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 했다. 이 문장은 너무 자주 인용되고 너무 자주 오독된다. 핵심은 군사적 행위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승리는 "무엇을 위한 승리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베트남에서 미국은 이 질문을 끝내 놓쳤다.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가 —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입안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목표를 단단히 쥐지 못한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남베트남의 대(對)게릴라전에 몰두하면서 정작 진짜 위협인 북베트남의 재래식 침공 능력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군사적 활동은 활발했으나, 그 활동을 정치적 목적으로 환산하는 회로가 끊겨 있었다.

이것이 첫 번째 맹점이다. 전쟁을 정치의 도구로 묶어두는 끈이 풀리면, 전술적 성공은 방향 없는 에너지가 된다.

균열 2 — 측정 가능한 것의 폭정

목적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이 채우는가. 측정 가능한 지표다. 베트남에서 그것은 바디카운트(적 사망자 수)였다. 셀 수 있기 때문에 관리할 수 있었고,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목적을 대체했다.

문제는 정치적 정당성, 국민의 인내, 적의 의지 같은 결정적 변수들은 셀 수 없다는 데 있다. 셀 수 없는 것이 진짜 중요할 때, 셀 수 있는 것에 매달리는 조직은 가장 측정하기 쉬운 곳에서 가장 부지런히 헛수고한다. 부차적 게릴라 세력을 상대로 군대를 소진시키는 동안, 전쟁을 결정할 진짜 변수는 측정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균열 3 — 수직적 역설: 성공이 패배를 부른다

에드워드 루트왁은 전략이 일상의 '선형 논리'와 정반대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사업에서는 옳은 방식으로 더 크게, 더 열심히 하면 더 성공한다. 그러나 전략에서는 같은 승리를 계속 거두면 반드시 '성공의 절정점(culminating point of success)'에 도달하고, 바로 그 승리가 반작용을 불러 붕괴를 부른다. 루트왁은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오류를 이 절정점을 넘어선 것으로 진단한다.

일본의 진주만이 이 역설의 교과서다.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에서 눈부신 전술적 기습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성공이 정확히 일본이 원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전쟁 의지를 꺾으려던 일격은, 거꾸로 미국의 의지를 결집시켰다. 전술적 절정이 전략적 자멸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성공이 더 큰 적대를 부르는 이 메커니즘은 전술의 영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상위 층위에서만 드러난다. 한 층위의 승리가 다른 층위의 패배로 뒤집히는 것 — 이것이 세 번째 맹점이다.

균열 4 — 적의 승리 조건을 오독한다

가장 깊은 맹점은 이것이다. 적이 나와 다른 기준으로 승패를 판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

북베트남은 미국을 군사적으로 격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었다. 그들의 승리 조건은 단 하나, 미국의 정치적 의지가 소진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상대로 이미 성공한 전략이었다. 미국의 약한 고리는 전장이 아니라 본국의 인내에 있었고, 북베트남은 정확히 그곳을 겨냥했다. 하노이 대령의 "중요하지 않다"는 그래서 허세가 아니라 전략의 정확한 진술이었다.

일본은 같은 맹점을 반대편에서 보여준다. 결전사상(艦隊決戦, 간타이 켓센)은 단 한 번의 결정적 해전으로 전쟁을 끝낸다는 교리였다.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의 기억이 이 교리를 신앙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교리에는 치명적 전제가 숨어 있었다. 미국이 1905년의 러시아처럼, 큰 해전 한 번에 패하면 강화에 응하리라는 가정이다.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일본은 미국의 거대한 산업 생산능력도, 한 번의 패배로 협상에 나서지 않을 미국의 전쟁 지속 의지도 계산에 넣지 못했다. 더 뼈아픈 것은, 미드웨이 이후 이 교리가 명백히 파산했는데도 일본 입안자들이 끝내 그것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전이라는 환상의 추구가 오히려 1945년의 패배에 기여했다.

적이 다른 전쟁을 싸우고 있는데 내 잣대로 승패를 매기는 것 —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네 번째 맹점이다.

 

4. 네 균열은 하나의 구조다

지금까지의 네 맹점은 따로 노는 결함이 아니다. 하나의 구조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목적이 정의되지 않으면(균열 1), 그 빈자리를 측정 가능한 지표가 채운다(균열 2). 지표를 좇아 전술적 승리를 쌓다 보면 성공의 절정점을 넘어선다(균열 3).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다른 승리 조건으로 싸우는 적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균열 4).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부·군대·국민이라는 삼위일체의 불안정한 상호작용으로 봤다. 전술적으로 이기고 전략적으로 지는 국가는 이 삼위일체가 어딘가에서 끊어진 국가다. 베트남에서는 군대가 정부와 국민을 잇는 전략적 번역을 포기했고, 일본에서는 군부가 정치를 압도해 전쟁 종결의 정치적 출구 자체를 설계하지 못했다. 둘 다 같은 병의 다른 증상이다.

전술적 탁월함은 이 구조적 공백을 메울 수 없다. 오히려 탁월할수록 공백을 더 오래 가린다. 이길수록 묻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이 모든 승리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5. 그래서, 우리는

이제 가장 불편한 질문으로 넘어갈 차례다. 이 구조적 맹점은 과거의 미국과 일본만의 것인가.

한국군은 "Fight Tonight"을 말한다. 오늘 밤 싸워 이길 수 있는 전술적 즉응성. 그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전구(戰區)에서의 군사적 승리가 무엇을 위한 승리인지, 그 승리를 통일이나 안정화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번역하는 회로는 누가 설계하고 누가 책임지는가.

결전의 유혹 — 단 한 번의 결정적 작전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는 환상 — 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술적으로 유능한 모든 군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우리가 상정하는 승리의 그림은, 적이 상정하는 승리의 그림과 같은가. 다르다면, 우리는 누구의 잣대로 승패를 판정하고 있는가.

이 글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네 개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의 군사적 목표는 정치적 목적에 단단히 묶여 있는가. 우리는 셀 수 있는 것에 매달려 셀 수 없는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전술적 성공은 절정점을 넘어 역효과를 부를 지점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적이 어떤 조건으로 이기려 하는지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가.

전투에서 이기는 법은 가르칠 수 있다. 전쟁에서 지지 않는 법은, 이 질문들을 멈추지 않는 조직만이 안다.

 

 

참고 문헌

  • Carl von Clausewitz, On War, trans. Michael Howard and Peter Pare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6/1984) — Books 1 & 8
  • Edward N. Luttwak, Strategy: The Logic of War and Peace, Revised and Enlarged Edi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2001)
  • Harry G. Summers Jr., On Strategy: A Critical Analysis of the Vietnam War (Presidio Press, 1982)
  • David C. Evans & Mark R. Peattie, Kaigun: Strategy, Tactics, and Technology in the Imperial Japanese Navy, 1887–1941 (Naval Institute Press, 1997)